인생을 즐겁게 하는 사명 - 9월 주제 “받은 사명에 충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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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인천평화교회 댓글 0건 조회 147회 작성일 23-09-08 19:42본문

인생을 즐겁게 하는 사명(막3:13~19)
9,10월 주제는 ‘받은 사명에 충성하자’입니다.
잔치를 할 때는 보통 돼지를 많이 잡습니다.
왜 소나 다른 짐승이 아닌 돼지를 잡는가 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소는 밭을 갈아야 하고,
개는 집을 지켜야 하는 사명이 있고,
닭은 새벽을 깨우는 파숫군 역할을 해야 해서 잡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돼지는 사명이 없기 때문에 잡아도 괜찮아서 잡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사명이란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고 꼭 하라고 시키신 일이고,
우리가 이 땅에서 목술걸고 집중해서 해야 될 일입니다.
본문은 예수님이 열두제자를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제자는 사명을 받은 사람들이고, 사명을 행할 사람들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1. 예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하라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14절에서 “예수께서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또한 사도라고 이름하셨다.]
이것은, 예수께서 그들을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함께 하기 위해서”, 즉 “교제하기 위해서”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예배와 경건생활의 중요성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문제에 봉착합니다.
그런데 그 모든 문제의 근본원인은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깨어졌기 때문입니다.
요한 3서 2절에는 “사랑하는 이여, 나는 그대의 영혼이 평안함과 같이, 그대에게 모든 일이 잘 되고, 그대가 건강하기를 빕니다.”
무엇보다 내 영혼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잘 되어야 다른 일들도 잘 된다는 말씀입니다.
눅10장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에서 예수님은 마르다처럼 열심만 가지고 뛰는 사람 원치 않으심을 가르쳐 주십니다.
주님은 마리아처럼 교제하는 자리, 하나님 말씀 사모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컴퓨터나 기계를 구입해서 쓸 때,
먼저,,,, 매뉴얼을 잘 읽어보고 거기에 따라 사용해야 고장이 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일하기전에 하나님과 마주하고 경청하는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달리기 전에 하나님께 엎드리는 태도를 배워야 합니다.
의욕, 열심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 뜻 가운데 있는가? 입니다.
하나님 뜻 가운데 있다는 것은 예배와 기도와 경건의 시간을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요한복음4장23절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자신에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무엇인가? 바로 예배입니다.
많은 사람이 사명에 대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사명받으면 다 그만두고 신학교가서 목사가 되고, 외국에 선교사로 가는 것이라
여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말하십니다.
나와 사귀고 좀 나누자, 나와 함께 하며 교제하자.
우리가 참된 예배자로 서는 것을 원하십니다.
이같이 예배가 바로 사명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예배의 태도, 자세부터 바로 세워야 되겠습니다
2.영혼 구원을 하라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14절 하반절은 계속하여 “또 그들을 내보내어서 말씀을 전파하게 하시며 -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신분이나 직분에 걸맞는 실력을 키워가야 합니다.
신분에 걸맞는 본질에 충실해야 그 가치가 올라갑니다.
군인은 잘 훈련되서 나라를 지키는 실력을 쌓아야합니다.
경찰은 치안유지하는 실력을 키워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의 본질적인 사명, 교회의 사명은 영혼 구하는 겁니다.
마가복음 1장 38절 “내가 복음을 전하러 전도하러 왔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본질적인 사명은 망각하고, 대신 다른 것 잘한다면 이는 정말 위험합니다.
교회 간판을 바꾸어야 합니다.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은 영혼구원 곧 전도입니다.
교회는 전도하는데 힘을 쓰지 않으면 내부적으로 분쟁하고, 분열됩니다.
예루살렘교회가 1만명이상되는 메가 처치로 성장했지만 안주하고 전도에 힘쓰지 않아 분쟁하고 결국 사방으로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세계 교회사를 보면 교회가 활기가 넘치고, 시련을 극복하고, 신선하고 감동을 주는 때는 영혼구원에 힘을 쓸때였습니다.
교회는 영혼살리는 본질적인 일에 집중할 때 가장 능력이 커지고 살아납니다.
전도하기 어려운 시대지만 그렇다고 못한다고 안된다고 핑게하면 안됩니다
기도하면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전도의 길을 열어주십니다.
빌립보 감옥에 갇혀 있던 바울과 실라는 쇠창살 밖에 있던 간수와 그 가족까지도 구원하였습니다.
나는 도저히 전도할 형편과 방법이 없다 탓하지 마십시오!
집이 멀어서, 직장일이 바뻐서, 남편이 반대해서, 아이들 때문에 시간이 없다..
할지라도 전도를 위해 기도한다면 에디오피아 여왕 신하 간다게를 구원하도록 빌립집사에게 붙여준것처럼,
구원받을 사람을 붙여주시는 은혜를 주십니다.
베드로가 기도하니까
이방인 고넬료 뿐만 아니라 그 일가친척까지도 구원받도록 하나님이 붙여주셨습니다.
베드로처럼 기도하며, 열린 마음 가지고 전도에 힘써 보시기 바랍니다.

3. 치유하는 삶을 살라고 부르셨습니다.
계속하여 15절에서 “귀신을 내어 쫓는 권능도 있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현대를 과학의 시대, 테크놀리지 기술의 시대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과학과 기술이 발달했어도 마음의 상처와 엄청난 스트레스로 고통속에 살아갑니다.
이것은 영적인 문제입니다.
과학과 기술로는 마음의 문제, 영적인 문제 1도 해결이 안됩니다.
교회의 사명, 성도의 사명은 귀신에 짓누름 받는 영혼들, 마음의 상처와 스트레스로 고통당하는 영혼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오늘 우리가 그들을 예수님 능력으로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통해 영혼을 죄악에서 구하였을 뿐만 아니라 육체의 질병도 마음의 상처,
정신까지도 구하는 전인적인 구원 사역을 감당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을 만나는 이유가
그 사람으로부터 어떤 정보를 얻을가, 어떤 유익을 얻을까, 어떤 도움을 받을까 대신에
그 사람의 아픔과 상처가 무엇인지에 관심을 가지고 그를 위해 중보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제사장으로서의 제자로서의 임무입니다.
치유의 역사는 모임과 만남과 전도를 통해 일어납니다.
줌이나, 영상이나, 카톡으로, 전화로 접촉할 수도 있겠지만,
성령님의 역사는 역시
함께 모여서 드리는 예배속에서,
또 인격적인 만남, 인격적인 대화, 나눔, 접촉을 통해 치유가 나타납니다.
목장모임은 영혼구원과 내적 성장과 치유를 위한 최고의 자리입니다.
예수이름으로 만나는 곳에
예수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 어떤 문제도 다 치유되고 회복이 됩니다.
결론>>>
당신은 무엇을 위해 그렇게 사는 겁니까? 인생 목표가 뭡니까?
세상의 것은 좋아 보여도 다 후회와 슬픔만 남는 헛됨 것일 뿐이지만
힘든 인생이지만 하나님께 받은 사명감당은 인생을 즐거움과 영광스럽게 해줍니다.
일하기 좋은 가을에 좀더 주님과 더 가까이 교제하시면서
인생을 즐겁게하는 사명에 충성자로 살아가시길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적용>
1. 당신은 무엇을 위해 그렇게 살고 있습니까?
부귀와 영화입니까?, 부귀와 영화와 적당한 위로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사명감당을 위한겁니까?
2. 당신은 어떤일에 가장 우선하며, 바쁘게 살고 있습니까?
돈을 버는 직장생활입니까? 사람과의 친교하는 일입니까? 가정살림입니까?
아니면 주님과의 교제(예배)입니까?


